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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09.07. 여기는 독도(71)역사⑬-독도의용수비대①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자 2022-08-09
조회수 11
군(軍)에 갔다 온 우리가 아니면 누가 하겠나. 같이 한번 해보자." "정히 생각이 그렇다면 같이 한번 해보지 뭐!" 아직도 38선에서는 포연이 가무러지지 않은 1953년. 울릉도 개척민 홍재현옹의 손자 홍순칠과 6·25참전 제대군인 정원도, 황영문, 조상달 등은 서로 의기투합했다.
'도근현 은기군 오개촌 죽도(島根縣 隱岐郡 五箇村 竹島).' 1952년 7월 울릉경찰서 마당 담벼락에 세워둔 어른 키만한 팻말 하나. 7개월여 전 1월 18일. 한국 정부는 국무원 공고 제14호 '인접 해양의 주권에 대한 대통령선언'에서 북위 38도 동경 132도 50분을 경계로 독도를 포함한 '이승만 라인'을 선포했다.

그러나 한국전쟁의 극심한 혼란을 틈 타 일본인들이 몰래 독도에 들어와 나무 팻말을 세운 것. 마침 독도로 고기잡이 나갔던 우리 어선이 팻말을 보고 신고해 군청직원과 경찰이 5t 경비선으로 8시간에 걸쳐 항해한 끝에 가서 뽑아온 것이다.

군청직원과 경찰은 대신 그 자리에 '대한민국 경상북도 울릉군 남면 독도'라는 팻말을 세워두고 왔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세워둔 팻말의 시멘트가 마르기도 전에 뽑아내고 다시 그들의 팻말을 세웠다.  

팻말 뽑기는 몇 차례 되풀이되었다. 급기야 독도에 미역을 따러간 울릉도 어부들이 일본의 해상보안청 함정의 위협으로 작업을 못하고 쫓겨나는 일까지 발생했다. 이에 울릉도 주민들의 감정은 날로 부풀어갔다.

같은 해 8월 15일. 광복절 기념행사가 울릉읍 도동초등학교 교정에서 열렸다. 기갑연대에서 근무하던 중 원산에서 심한 부상을 당해 육군병원을 거쳐 한 달 전에 명예제대한 홍순칠도 지팡이를 짚고 광복절 행사에 참가했다.

그는 참전용사 대표로 축사를 하며 "일본제국주의 망령이 7년 만에 되살아나 독도를 강점하려고 한다"고 말하고 "섬 사람은 대동단결해서 독도를 지키자"고 웅변했다. 내친걸음에 그는 향군회 울릉군지부 발족에 참여, 회장에 출마했다.

홍순칠은 향군회 일을 보면서 울릉군수로부터 민병대 조직을 부탁받고 독도의용수비대 결성을 마음먹는다. 이에 '독도방위계획서'를 만드는 한편 할아버지 홍재현옹으로부터 의용수비대 조직에 필요한 경비를 지원받는다.

홍순칠은 할아버지로부터 받은 돈과 오징어 판 돈 500만환을 들고 부산으로 내려가 군복무 시절 동료와 미군부대 주변에서 무기를 구입했다. 의용수비대가 무장할 경기관총 2정, M2 3정, M1 10정, 권총 2정, 수류탄 50발의 무기를 확보했다.

이뿐만 아니라 독도에서 쓸 0.5t 보트 1척과 대원들이 먹을 쌀과 생활 장비를 마련하고 대원 규합에 나섰다. 1차로 정원도 황영문 조상달 하자진 이상국 이규현 서기종 등 7명의 동지들이 뜻을 같이하기로 한다. 이들 대원들은 일본인 적산가옥 2층 홍순칠의 집에 모여 큰 황소 1마리를 잡아 며칠간 먹고 마시며 결전 의지를 다졌다.(홍순칠 저 '이 땅이 뉘 땅인데')

1953년 4월 20일 자정. 홍순칠을 대장으로 한 독도의용수비대 1진은 정이관 선장이 모는 5t이 채 안 되는 오징어잡이배 '삼사호'에 몸을 싣고 독도로 향했다. 그들은 잔잔한 바다를 밤새 달려 독도 서도 가제바위 위 강치들의 환영을 받으며 서도에 닻을 내렸다.

서도에 접안할 때는 일본 해상보안청 함정과 충돌이 생기지나 않을까 긴장했으나 다행스럽게도 아무런 사고 없이 상륙할 수 있었다. 서도에 내린 대원들은 일사불란하게 짐을 내려 아침밥을 지어 먹었다.

삼사호는 다시 보급품 수송을 위해 울릉도로 돌아가고 홍순칠 대장과 이상국 대원은 보트를 타고 지형순찰에 나섰다. 나머지 대원들은 앞으로 생활하게 될 주거지에 대형 천막을 치고 국기를 게양할 수 있도록 국기게양대를 만들었다.

서도에 본부를 마련한 독도의용수비대원들은 일본 함정의 출현이 없는 날이면 아침부터 바다에 뛰어들어, 미역을 뜯고 전복을 따는 평온한 날들을 보냈다. 밤이면 무학(無學)의 대원들이 호롱불 아래 둘러앉아 글 배우기에 여념이 없었다.(의용수비대원 정원도씨 증언)

대원들은 식수를 찾지 못해 빗물을 마시고 잦은 설사를 하면서도 틈틈이 모자라는 부식을 마련하기 위해 나물이 되는 풀을 뜯고, 갈매기 알을 주워다 삶았다. 폭풍우에 보급이 끊길 때를 대비해 강치를 잡아다가 갈무리하고 갈매기를 잡아 털을 뽑고 염장(鹽藏)했다.

평안한 날들 가운데서도 독도의용수비대원들은 '허가 없이 상륙하는 자는 총살'이라고 절벽 바위에 흰 페인트로 써놓고 일본 함정 출현에 모든 신경을 곤두세웠다.

cjje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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