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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09.06. 제주해녀,1950년대 일본의 독도 야욕 막는데 한몫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자 2022-08-09
조회수 80
반세기 전인 1950년대 초.중반 독도에 원정 물질을 나간 제주해녀들이 독도를 지배하려는 일본의 야욕을 꺾는 데 한 몫을 한 것으로 알려져 주목받고 있다.

6.25전쟁 직후 국내 정서가 혼란한 틈을 이용해 일본은 독도에 수시로 순시선을 보냈고 이에 맞선 민간 의용수비대인 ‘독도의용수비대’는 제주해녀와 상부상조하며 일본의 실효적 지배를 차단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같은 내용은 9일 해녀박물관에서 열린 ‘독도 출가해녀와 해녀항일’ 심포지엄에서 제기됐다. 제주해녀들은 당시 미역과 전복, 소라가 독도 바다에 지천으로 널려 있다는 소문에 이곳까지 진출했다.

이들은 해산물을 채취하면서 독도에 사람이 발붙일 터전을 마련했고 수비대원들에게 음식과 생필품을 전달하는 데 일조했다.

19살이던 1953년 독도에 간 박옥랑(76.여)씨 이날 “작업을 할 때마다 순시선이 계속 접촉해 왔는데 일본은 당시 독도에 대한 관심을 한시도 놓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박씨는 “해녀들이 간혹 전복을 캐내 수비대원들에게 주면 이들은 좋아서 야단 들이었다”며 제주해녀와 수비대와의 인연을 얘기했다.

풍랑이 칠 때면 울릉도를 오가는 배가 뜨지 않아 먹을 것이 떨어진 해녀들과 수비대원들은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갈매기알을 주워 먹었다.

조봉옥(81.여)씨는 “수비대원들이 갈매기알을 주워 삶은 후 해녀들에게 나눠줬고 미역을 베다가 손을 다치면 의약품을 가져와 치료를 해줬다”며 “특히 ‘대장’으로 불렸던 홍순칠씨는 미역을 운반해주고 날씨를 알아봐 주는 등 해녀들에게 은인 이었다”고 말했다.

1959년 독도에 들어간 김공자(70.여)씨는 “제주해녀들이 독도에 수시로 머물면서 나중에는 30, 40명이 살 수 있도록 굴속에 나무를 이용해 숙소가 마련돼 사람들이 정착하는 데 안도감을 갖게 됐다”고 회상했다.

독도의용수비대와 제주해녀들의 만남은 1953년부터 3년 8개월간 지속됐다. 1956년부턴 국립경찰이 독도경비를 맡으면서 이들의 인연도 멀어지게 됐다.

그러나 제주해녀들은 당시의 인연을 잊지 못해 지난해 ‘독도사랑해녀회’를 구성했다.

이날 심포지엄에선 반세기전 독도를 지키기 위해 자원한 청년들과 생업을 위해 이곳으로 온 제주해녀들이 공존공생하며, 일본의 독도 침탈을 견제하는 등 제주여인들의 강인한 기상을 널리 알리면서 이들의 기여한 역할에 대해 재조명을 받았다.

<좌동철 기자>roots@je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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