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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09.06. [경향과의 만남]“日 지유샤판 역사교과서 기본적 팩트조차 못갖춰”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자 2022-08-09
조회수 31
왜곡 교과서 채택 반대 ‘네트21’ 다와라 요시후미 사무국장

일본 문부과학성은 지난 9일 극우단체인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이 펴낸 지유샤(自由社)판 역사교과서의 검정을 통과시켰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일본의 침략 전쟁을 미화하고 식민지배를 정당화한 역사왜곡 교과서는 2001년 후소샤(扶桑社)판이 등장한 이후 두 종류로 늘었다. 일본의 우익 세력은 대대적인 선전전을 벌이며 후소샤판 교과서 채택을 유도했지만 채택률은 1%도 안되었다. 여기에는 일본의 시민단체 ‘어린이와 교과서 전국네트 21(네트21)’과 다와라 요시후미(俵義文·68) 사무국장의 역할이 컸다. 전국을 돌며 왜곡된 교과서를 채택하지 말 것을 부르짖은 그의 호소에 학교가 호응했다. 이제 그는 또다른 싸움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20일 도쿄 사무실에서 만난 다와라 국장은 “지유샤판은 기초적인 팩트마저 제대로 갖추지 못한 교과서”라며 “후세에 올바른 역사를 가르쳐야 똑같은 역사적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지난 9일 지유샤판 교과서가 문부과학성 검정을 통과했습니다. 어떤 책입니까.

“지유샤판은 기존 역사왜곡 논란을 빚은 후소샤판 교과서와 90%가량 내용이 같습니다. 일부 사진과 그림이 바뀌었지만 ‘위험한’ 내용은 본질적으로 후소샤판과 동일합니다. 교과서의 기본조차 갖추지 못했습니다. 지유샤판은 검정 신청할 때 516곳의 오류가 문부성에 의해 지적돼 136곳을 수정한 끝에 재신청했습니다. 아직도 오류가 많습니다. 오류를 방치한 채 검정신청을 다시 내고 통과한 것은 교과서 출판계의 상식으로 생각할 수 없는 얘기입니다.”

-역사 왜곡의 구체적 내용에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이 교과서는 청·일 및 러·일 전쟁 이후 일본의 전쟁을 정당화했습니다. 태평양 전쟁이 침략전쟁이란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일본의 방위전쟁’ ‘아시아 해방에 도움이 된 성전’으로 미화했습니다. 한국의 강제병합·식민 지배에 대한 반성도 찾아볼 수 없고 또 ‘군위안부·조선인 강제연행’ 등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화해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는 한·일간 최근 분위기를 감안할 때 현실을 역행하는 교과서입니다.”

-교과서 문제를 오랫동안 연구해왔습니다. 어떤 인식에서 그런 일을 하셨습니까.

“잘못된 역사 인식을 담고 있는 역사교과서는 사용되면 안됩니다. 지유샤판 교과서는 일본의 역사연구, 역사교육이 지향하는 바를 완전히 무시했습니다. ‘일본은 매우 훌륭한 국가다. 그 중심에는 덴노(天皇)제도가 있다’ 이런 기조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또 지배자 중심의 서술로 돼 있습니다. 역사는 지배자나 덴노 중심이 아닙니다. 역사를 움직인 것은 아무것도 없는 민중입니다. 이런 교과서로는 역사 본래의 모습을 배울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로된 역사를 가르쳐야 후세가 똑같은 잘못을 범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그런 교과서를 통과시킨 문부과학성에 책임이 있지 않습니까.

“ ‘문부과학성에 검정을 제대로 하라’거나 ‘검정 합격이 불만이다’라고 얘기한 적이 없습니다. 역사를 왜곡한 교과서를 중학교에서 사용해도 좋다고 한 데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습니다. 또 일본 정부는 불충분하긴 하지만 과거의 침략 전쟁, 아시아 국가에 피해를 준 데 대해 무라야마 담화나 고노담화 등을 통해 인정했습니다. 그런 선언과 담화는 아시아 국가에 대해서뿐 아니라 일본 국민에 대한 공약이기도 합니다. 정부는 그런 약속에 부합하는 교과서를 교육현장에서 사용토록 할 책임이 있습니다.”

-지유샤판 교과서 채택 저지를 위해 네트21은 어떤 활동을 전개할 예정입니까.

“네트21에는 280여개의 회원단체, 회원 5500여명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회원이나 회원사들에 대해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지시하지 않습니다. 지역별로 ‘이런 교과서가 학교 현장에 들어와서는 안된다’고 여론을 호소하는 방법을 통해 교과서 채택을 막아왔습니다. 물론 지역별 집회와 강연회를 병행했습니다. 네트21과 임원회 등은 이를 위해 회원들에게 정보를 제공했습니다. 이번에도 이런 식으로 활동을 하게 될 것입니다.”

-채택률은 어느 정도나 될 것으로 예상합니까.

“사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알 수 없다는 게 솔직한 답변입니다. 저는 점쟁이나 예언가도 아닙니다. 일부 매스컴에서도 그런 질문을 많이 합니다만 채택률 전망을 물어보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네트21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1997년 이후 새역모가 생기고 그들이 이상한 교과서를 만들어 교육현장에 들여온다고 하기에 무슨 일이 있어도 그걸 저지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본래 우리는 새역모를 반대하는 단체는 아닙니다. 일본에서 더욱 좋은 교과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 단체의 목표이고, 그것을 위해 결성했습니다. 1965년 침략전쟁을 기술한 <신일본사> 교과서가 문부성에서 부적격 판정을 받은 후 이에나가 사부로(家永三郞) 선생이 교과서검정 위헌 소송을 내자 그의 법정투쟁을 지원한 데서 출발했습니다. 그의 정신을 계승해 98년 6월 발족했습니다. 물론 새역모의 왜곡 교과서 반대운동을 벌이고 있지만 순전히 그들 때문에 네트21이 생겨난 것은 아닙니다.”

-이 일을 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입니까.

“무엇보다 재정적으로 어렵다는 것이죠. 네트21을 회원들의 회비(1인당 3000엔)와 모금활동 등을 통해 운영하는데 최근 2년간 적자입니다. 유인물 인쇄 부수가 늘어나고 활동 영역도 넓어지면서 재정부담이 늘고 있습니다. 한국이나 중국 등 해외에서 활동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일본 언론들의 관심이 점점 줄어드는 것도 아쉽습니다. 2001년과 2005년 교과서 채택 때는 취재나 인터뷰 요청도 많이 들어왔는데 요즘엔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우익 단체의 방해공작이나 압력도 적지 않을 텐데요.

“2001년만 해도 집회나 강연회 등에 찾아와 방해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일본 우익도 힘이 좀 빠졌는지 많이 줄었습니다. 그들이 훼방을 놓을 것에 대비해 우리도 대책을 세워놓고 있습니다. 먼저 그들이 나타나면 정중하게 얘기해 방해하지 못하도록 하거나, 연단 맨 앞줄이나 주변에는 소란을 진정시킬 수 있도록 우리 측 사람들을 많이 배치하는 것 등입니다.”

-최근 들어 일본 사회가 부쩍 우경화한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렇다고만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90년대 이후 자민당 등을 중심으로 군대보유 등을 금지한 헌법 9조 개정 논란이 꾸준히 제기돼 왔고 일정 부분 효과도 거뒀습니다. 1년 만에 물러나긴 했지만 아베 신조 같은 사람은 우익 세력에 힘입어 총리에 올랐습니다. 헌법 9조 개정문제는 몇년 전만 해도 찬성이 반대를 웃돌았지만 지금은 여론의 60% 이상이 개정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언론이 우경화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산케이나 요미우리뿐 아니라 소위 진보매체라고 하는 아사히도 우측으로 많이 가고 있습니다. 예컨대 북한은 인공위성이라고 하는데 언론은 다 미사일이라고 하면서 여론을 우측으로 유도하고 있습니다. 유감스럽지만 최근 우경화 경향은 언론이 만들고 있습니다.”

-네트21에 대한 평가는 어떻습니까.

“만약 이 네트워크가 없었다면 2001년과 2005년 교과서 채택 당시 후소샤 교과서가 지금보다는 많이 채택됐을 것이라고들 얘기합니다. 또 일본의 교과서가 더 나쁜 방향으로 가지 않는 데 네트21이 큰 도움이 됐다고들 합니다. 우리의 모태나 다름없는 이에나가 선생의 정신이 일본의 평화, 민주주의, 헌법 9조 수호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자부합니다. 이에나가 선생의 투쟁이 없었더라면 교과서 문제는 지금보다 상황이 훨씬 나빠졌을 겁니다.”

-왜곡 교과서에 대해 한국인이 매우 분노하고 있습니다.

“한국에 한정된 문제는 아닙니다. 다른 나라가 틀린 역사를 교과서에 기술한 것을 보고 바로잡으라고 요구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일본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다른 나라에서 일본 역사를 왜곡하면 분노하고 항의할 겁니다. 모든 나라가 그렇겠지만 역사를 자국 중심으로 쓰기 때문에 그런 일이 나오는 것이라고 봅니다. 아직 시작단계이긴 하지만 한·중·일 3국의 시점을 모두 반영하는 새로운 역사책을 쓰기 위한 움직임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2005년엔 3국 학자들이 공동으로 집필한 역사책 <미래를 여는 역사>는 그 결과물입니다. 아직 민간 수준이지만 역사 교육의 흐름을 바꾸자는 논의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다와라 요시후미는 누구

다와라 요시후미 ‘어린이와 교과서 전국네트 21’ 사무국장은 일본 교과서 운동의 상징적인 존재다. 대학을 졸업한 이듬해인 1965년 일본의 교과서 검정제도에 대해 위헌소송을 낸 이에나가 사부로(家永三郞) 도쿄교대 교수의 법정 투쟁을 지원하면서부터 이 길을 걷고 있다. 2001년에는 전국 150여곳을 돌면서 후소샤판 역사교과서를 ‘위험한 교과서’라고 비판했다. 40여년간 역사 바로잡기와 교과서 운동에 헌신해온 그의 노력 덕분에 후소샤판 역사교과서의 채택 운동을 ‘완패’로 끝나게 했다는 평가다. <이것이 문제 ‘새역모’ 교과서>(2005), <위험한 역사교과서 ‘노(No)’>(2005), <철저 비판, 국민의 역사>(2000)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글·사진 도쿄 | 조홍민특파원 dury12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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